성경과 성도의 삶
목회자로 캐나다에 살면서
기도와 상담

 

:

내가 몰랐던 실화(말?)모옴
2020-03-09 18:53:06  
 (*IMF 위기가 있었을 때 교회를 담임했던지 아니면 어느 교회 부목사로 섬겼을
터인데 두 분 대통령과 TV를 통해 금모으기 시청만  생각나면서 이렇게 어려움을
겪었던 분들의 기억이 없습니다. 교회 울타리 안에서 안주 했기 때문일까요.
분명히 힘들었던 성도 분들도 계셨을 터인데, 그 때 자금이 돌지 않아 부도나
감옥에 들어가셨던 장로님이 IMF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아래 글도 많은 목사님들이 설교에 인용했다고 하는데 저는 처음 읽는 내용이라.
너무 부끄럽고 죄송한 심정입니다. 그래도 그 힘든 때 이런 '아주머니' 때문에
다시 삶에 대한 소망을 가졌다니 감사할 뿐입니다.
너무 부담스런 설교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은 월요일 새벽입니다.)

악마에서 인간으로 돌아온 IMF실패자의 체험고백

불바다 될 뻔한 용산역 식당촌이야기


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  2020-03-08  http://kbkc.org/index.html


 

IMF 위기가 터진 1997년 겨울 모든 것을 잃은 사내가 있었다. 꽤 잘 나가던 중소기업인이었으나 연쇄 부도를 맞는 바람에 회사도, 집도 다 잃었다. 

이제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회사 간부도, 종업원도 떠났다. 그리고 사랑하던 처자식마저도 그를 버렸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갈 곳이 없어 처음에는 가까운 친지 집을 전전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이상 지낼 수 없었다. 어느 친구 집에선 아예 문전박대를 당했다. 여인숙에서 며칠 지내다 결국 길거리로 나왔다.

‘아 인생이란 이렇게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이구나….’

쓰라린 자각이었다. 용산역에 가니 비슷한 처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IMF 위기 여파라고 한다. 여기도 아귀다툼이었다. 그는 번번이 무료배식 순서를 빼앗겨 끼니를 걸러야 했다. 굶주림에 지친 그는 동냥에 나섰다. 행인들은 외면했다. 어쩌다 동전 몇 푼을 얻어 친지들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상대방은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이제 그는 서서히 악을 품기 시작했다. 이렇게 비참한 삶, 매정한 세상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그 날은 의외로 빨리 왔다. 영하 15℃가 넘는 한파가 몰아치던 날 아침, 추위와 허기에 지친 그는 역 주변 식당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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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배고파요…, 찬밥이라도 한술 주세요.…"

그러나 그를 본 주인 남자는 “아침 개시부터 재수 없게시리…, 꺼져!"라는 고함소리와 함께  밥 대신 물을 끼얹었다. 다음 집도, 또 그 다음 집도…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물을 끼얹었다. 그 엄동설한에 옷에 묻은 물은 곧 고드름으로 변했다.

드디어 그의 눈에 핏발이 솟고 가슴은 분노로 주체할 수 없었다.

“에잇! 이 개 같은 세상. 다 불 질러 죽여 버리고 나도 죽자!"

그는 주변 상가를 다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석유나 신나를 구하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순간 허름한 국수집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 아주머니가 큰 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수를 건져 올리고 있었다. 참으로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3일간이나 굶은 그는 무작정 국수집에 뛰어 들어갔다. 안주면 주인 목을 졸라서라도 빼앗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식당 주인 아주머니는 아무 말 없이 듬뿍 담은 한 그릇을 가져왔다.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 그가 한 그릇을 더 청하자 아주머니는 아까보다 더 많이 담아 가져다 주었다. 실로 오랜 만에 포만감이 들었다. 덜컥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줄 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 수 없다.’ 그는 문을 열고 줄행랑을 쳤다. 차도를 가로질러 냅다 뛰고 있는데 아주머니의 고함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괜찮아…, 뛰지마…, 다쳐…"

 

순간 그는 귀를 의심했다. 그것은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힐끗 뒤를 돌아보니 식당 아주머니가 도로변까지 나와 안쓰럽게 이쪽을 바라보며 잘 가라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밥값도 안내고 도망가는 “나쁜 놈"이라고 소리쳐야 정상일 텐데 도리어 자신을 염려해주는 아주머니…!!. 그의 마음속에 뜨거운 무엇이 치밀어 올랐다.…

아주머니의 세마디 외침과 함께 손을 흔드는 마지막 모습을 보고 그는 악마에서 인간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삶의 의지를 찾았다. 어찌어찌해 중남미까지 가서 사업가로 다시 재기해 한국에 돌아왔다. 이 이야기는 한동안 인터넷에 크게 회자됐고 교회에서 목사님들의 설교로도 유명하다.   

어쩌면 우리나라가 과거 힘든 시절을 버텨온 것은 이처럼 한국인 특유의 정(情)의 문화, 다시 말해 공감의 미덕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반면 지금은 사회 전방위 측면에서 서로 이해가 부족하고 대화가 단절돼 있다. 우리의 정의 문화를 살릴 수 있는 방도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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