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도원에 아주 다루기 힘든 수도사가 있었다. 교만하여 남과 시비와 불화를 일삼는 아주 눈엣가시 같은 사람이었다. 말다툼이 벌어지면 십중 팔구
그가 개입되었다. 수도사들이 모인 곳마다 그의 이름이 오르고 내렸다. 친구는
하나도 없고 적만 만들었던 이 수도사는 결국 분을 참지 못하고 수도원을 떠나고
말았다. 그가 떠난 것을 수도사들은 좋아했지만 수도원장은 먼 길을 달려가 떠난
수도사 다시 돌아오라고 설득하고 달랬다.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수도사에게 만일 돌아오면 봉급도 주고 수도원의 좋은 보직도 주겠다고 약속했다.
며칠 후 다시 돌아온 수도사를 보고 다른 수도사들은 얼굴빛이 변했다. 그나마
돌아오면 월급까지 주기로 했다는 원장의 말이 전해지자 수도사들은 격앙했다.
마침내 수도사들은 원장에게 찾아와 해명을 요구했다. 그때 수도원장이 말했다.
“이 수도자가 말썽을 많이 부린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우리가 인내와
친절과 긍휼의 마음을 배운 것도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할
이유입니다. 이것은 그만이 줄 수 있는 살아 있는 교훈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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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안에는 늘 가시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로 인하여 상처를 받고
아파합니다.그 가시만 없으면 공동체가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가시를 꺾어 내쫓습니다. 그런데 그 가시가 사라지면 평온할 것 같았는데 공동체
안에는 또 그 가시 같은 노릇을 하는 다른 가시가 생깁니다. 그 다른 가시는 이전에
가시보다 더 큰 가시 노릇을 합니다. 이런 일을 반복하다 보면 공동체는 와해되고
맙니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 있는 가시는 내 몸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품고 다스리며
 
사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교회 공동체에 가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허락한 직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덮고 가야 합니다. 이것을 깨닫는데 30년이 걸렸습니다.


문병하 목사/양주 덕정감리교회